1995년작 공각기동대에서 인형사와 쿠사나기 소령의 대립을 통해 인간 존재에 대한 정체성에 대해 화두를 던진 오시이 마모루가 9년이 지나 더 난해한 목소리로 돌아왔다.
전작에서 네트의 세계로 자신의 존재 영역을 넓힌 쿠사나기 소령은 네트속에 존재하며 자신이 가진 인간 자아의 정체성을 근근히 보여주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구성은 뇌를 제외한 몸 전부가 사이보그인 바트와 인간의 몸을 가진 토구사의 진행으로 이끌어 간다.
이 둘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인간이라는 존재라는 자아는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인형(로봇)과 구분하는 것에서 무엇으로 차별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영화상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과학 발전으로 전신을 기계로 의체화시킨 몸에 뇌의 기억을 복사한 인간이란 존재와 인간이 만든 로봇에 데이터를 탑재한 로봇이란 존재에 외형적인 차이는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이란 존재로 아이덴티티를 줄 수 있는가에 대한 화두가 영화 내내 머리를 흔들어 놓는다.
더욱이 이 영화는 장자의 호접몽을 연상시키는 구성과 데카르트를 언급하며 공자와 성경까지 언급하면서 철학적 논쟁을 펴고자 노력한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정체성이 전작에서는 고스트라는 단어를 만들어서 설명하고자 했다면 이번에는 번식을 통한 생명의 재창조와 기억이라는 것으로 말하는 데 영화속에서는 그것을 비틀면서 설명한다.
영화 초반 난자에 도달한 정자로 인해 핵분열이 일어나는 장면이 연출되나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 만들어지는 과정이었고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조작되기 쉬운 것인지를 해킹을 통해 조작하는 장면들을 보여줌으로써 내가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라는 미래사회의 묵시론적 철학 관점을 보여준다. 그러한 장면들로 인해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뇌활동을 활발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러한 연출에서 흠이라면 너무 드러내놓고 표현을 하기에 관객으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게 하고 영화속 바트와 토구사란 인물이 미래의 형사라는 존재가 아니라 형사를 가장한 철학자로 보이게끔해서 영화적 재미에서 뇌를 이탈시키게 만들었다.
매트릭스의 경우 철학적 논쟁을 필 많은 소재를 담고 있음에도 영화의 재미를 놓치지 않고 그 배경으로 철학을 스며들게 해서 영화를 본 후 다시 생각하게 만든 점에 비하면 오시이 마모루가 그답게 너무 영화에 무게를 무겁게 한 것은 아닌가 싶다.
실사에 가까운 그러나 이 영화의 인형과 같이 실사가 아닌 화려한 CG의 사용은 관객의 눈을 만족시켜 주며 전작과 마찬가지로 음악을 맡은 가와이 켄지의 몽환적인 음악은 영화의 몽환적 환타지와 어울려 관객의 귀도 즐겁게 해준다.
OST중에서 "傀儡謠 – 新世に神集いて" – Kawai Ken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