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에 “늑대와 춤을” 이 개봉했을 당시 미국의 백인들은 이 영화에 극찬을 보냈다. 그러나 과연 미국의 인디언들도 그 영화에 극찬을 했을까? 바로 이러한 오류가 13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반복되었다.
이 영화는 백인들이 동양의 정서를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듯한 영화다. 좀 더 달리 말하면 일본에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으면서 일본의 문화를 책으로 펴낸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과 다를 바가 없다. 나 역시 일본 문화를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 허나 “국화와 칼”이나 이 영화에서 말하는 일본의 모습이 신비주의로 똘똘 뭉친 허구적 상상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더욱이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슴 한구석에 있는 극단적인 우려중 하나가 이 영화의 제작진들의 생각이 혹시 핵폭탄 투여로 인한 가해자입장에서의 피해의식의 보상차원에서 메이지시대를 배경으로 미국인의 친일적인 모습을 만든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일본 우익을 위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자국내 친일세력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영화의 역사적 헛점을 집고 넘어가면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것은 아마도 무쓰히토 천황시대의 1877년에 일어난 서남전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사계급들의 마지막 전쟁이나 당시 지도자는 전쟁에 적극 참여하지 않고 패배주의에 물든 사이고 다카모리였기 때문에 영화의 주인공과는 맞지 않는 설정이었고 시기도 역사와는 다르다.
그리고 일본군도 이미 신식군대교육을 받고 여러번 전쟁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군대였기 때문에 이 영화의 시작부분에 나오는 알그렌 대위를 부를 만큼 약한 일본군도 아니였을 것이다. 그리고 독일식으로 교육받은 것으로 안다. 오오쿠보 도시미치등을 비롯한 유신지사들이 독일의 개혁과정을 자국에 적용했다고 하니까.
영화의 촬영장소는 조금 웃기다. 카츠모토의 마을로 나오는 곳이 왠지 어색하다 싶었는 데 뉴질랜드에서 세트를 만들고 찍었다고 한다. 전혀 일본 같지 않는 무대임에도 가장 일본과 닮게 만들었다고 극찬을 하는 걸 보면 백인들의 관점에서의 동서양의 차이란게…
한가지 더 말할 것은 일본인들이 만약 이 영화를 극찬을 한다면 오류에 빠질 것이다. 그것은 이 영화에서 말하는 칼로 대표되는 사무라이 정신이란 달리 생각하면 그들이 지배하던 시기는 법률국가가 아니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특정 무장세력이 지배하던 시기는 사회적 체계가 법률제도로 갖춰지지 않은 미개사회이므로 스스로 메이지유신 이전의 시대를 미개사회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역사를 가진 미개한 나라의 하나의 풍습이 한국과 중국의 수천년 법제화된 근대역사를 가진 나라를 제치고 동양의 대표적 문화 코드로 내세운다는 것은 어패가 있다.
영화는 지극히 헐리우드 스타일로 만들어져서 눈과 귀가 만족스런 영화이다. 이건 부정하지 않으나 계속되는 백인들의 타문화에 대한 도도하고 자기만족적인 이해관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이다. 나중에는 오히려 가르치려고 한다. 특히 탐 크루즈 개인적인 관점과 미국의 대일관계를 위한 복선을 깐 듯한 이 영화의 배경에서는 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다.
PS : 다음부터는 절대 코엑스 메가박스 15관에서 영화를 보질 않겠다. 15관은 처음 이용했는 데 옆의 관에서하는 사운드가 내내 들렸다. 비가 내리는 장면을 보고 있는 데 왼쪽귀에서는 전쟁 폭음 소리가 들리질 않나… 아마도 반지의 제왕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