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 : 임상수
– 출연 : 한석규, 백윤식, 송재호, 김응수, 조은지, 김윤아, 윤여정
– 제작 : 한국, 2005
– 장르 : 미스터리, 코메디
초등학교 시절 갑자기 휴교까지 내려 어리둥절하게 했던 그 날은 나는 기억한다. 영문은 모르지만 학교가 휴교되어 좋아했던 철없는 기억이다.
이 영화는 김재규의 총성이 울리기 전과 후의 하루동안을 그려내고 있다. 권력자의 총애를 받지못한 시기심에 쌓인 옹졸한 인간, CIA의 졸개, 미치광이, 유신을 씻긴 열사등으로 알려진 김재규를 그려내었다.
김재규에 대한 해석은 새로운 접근방식이라기 보다는 기존의 여러 인식들을 하나로 묶어서 표현하였다. 얼핏 보았을 때는 민주주의를 의한 사나이로, 또 얼핏 보았을 때는 권력을 가지려는 추악한 인간으로 그려내었다. 즉,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나레이션대로 어떤 인물인 지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인물로 묘사하였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인물들의 성격을 코메디로 묘사하였다. 박정희의 성적취향에 대한 농담부터 차지철, 김규원등의 인물 묘사는 권력을 가진 자들의 내면을 발가벗기기식의 코메디로 그려내었고 국방부에 모인 군부와 정치권 인사들의 대책회의 장면은 권력의 끝자락에 빌붙어사는 정치인들을 조롱하였다.
이러한 점들에서는 재미있는 요소를 줄 수 있으나 너무도 코메디적 표현에 집중해서 인지 정작 감독이 말했던 “영문도 모르게 희생된 사람들의 진혼곡”이라는 영화의 취지는 퇘색되었다. “장원태”라는 인물을 제외하고는 사건에 엮인 다른 인물들의 표현에는 너무 궁색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윤여정씨의 영화 후반부 나레이션은 진혼곡이라는 분위기보다는 철 없는 인간들 탓하는 넋두리로 느껴진다.
백윤식의 연기가 돋보였고 조연들의 연기 역시 뒷받침되어 재미있는 구성을 보여주었으나 정작 한석규의 연기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다.
그리고 김재규라는 인물이 진정 유신을 끝낸 열사인지, 아니면 권력에 도태된 옹졸한 감정을 가진 미치광이인지는 영화에서 알 수는 없으나 그의 최후 변론은 그도 자신의 생각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실패한 혁명가로는 인정해 줄 수 있겠다.
(김재규의 최후 변론 내용 중 일부)
무슨 이유로든 이것은 말살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72년 유신과 더불어 까닭없이 말살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하여 유신체제는 국민을 위한 체제가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종신 대통령 자리를 보장하기 위한 체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나는 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통령이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의무와 책임은 있어도 이것을 말살할 권한은 누구로부터 받을 수도 없고 절대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에는 모순의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특히 체제에 대한 반대의 소리가 높아지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라는 소리가 높아지자 긴급 조치 9호가 75년에 발동되어 수많은 사람이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러나 이 불은 꺼지지 않고 탔고 번져 갔습니다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인요,
두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우리 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 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이 목적은 10.26혁명 결행 성공과 더불어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해결이 보장되었습니다.
심판장님, 심판관님, 여러 날 계속되는 재판에 매우 피곤하시겠습니다. 또 오늘 제가 이 장황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경청해주시니, 마지막 이 세상을 하직하고 가더라도 여러분에 대한 고마움은 간직하고 가겠습니다.
나는 오늘 마지막으로 이 나라에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켜놓았다. 20∼25년 앞당겨놨다하는 자부, 이것은 누구의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이 자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대한 민국에 자유민주주의가 만만세가 되도록 기원하고 또 10월 26일 민주회복 국민혁명이 만만세가 되도록 저는 기원합니다.
다만 내가 이 세상을 빨리 하직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가 이 나라에 만발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가는 그 여한이 한량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이 기약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못 보았다 뿐이지 틀림없이 오기 때문에 나는 웃으면서 갈 수 있습니다. (1979.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