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달이 후반으로 접어들 무렵 매출하락과 사이트 리뉴얼 외주 작업등의 과중한 스트레스로 인해 일탈을 꿈꾸고 있던 상황에 봄철 휴양림에서 들이키는 신선한 산소같은 신나는 공지사항이 메일로 날라왔다.
사이의 “쇼핑몰 MD, 기획 실무 가이드”클럽에서 온 중국 청도로 시장 조사하러가는 여행에 관한 공지였다. 주최는 다음의 “2jobs”카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2jobs”에 회원으로 가입하게 되었다.
일정은 6월 4일부터 7일까지이고 경비는 219,000원이었다. 배로 들어갔다가 배로 들어오는 선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여행인 것이 처음에는 망설이게 했는 데 반대로 복잡한 머리를 식히는 것과 하나의 목적으로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한 시간을 갖기에는 적당한 공간이라 생각되었다.
여행을 신청하고 입금하고 난 후 여권을 만들었다. 이것 발급에 45,000원이 인지대로 사용되었다. 6월 1일이 발급 예정이었는 데 발급되기까지 “타잔보이”님과 “탁구”님, “아둥”님의 여권사본 팩스로 보내달라는 SMS와 전화를 무지하게 받았다. “탁구”님에게는 본의아니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기도 할 정도로…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죄송)
출발 전날인 금요일에 여행 준비는 해야겠는 데 시간은 없고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일처리를 하라는 사장의 지시도 있고해서 철야에 가까운 야근까지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업무시간에 잠시 시간을 내어서 우리은행에 가서 환전을 했다는 것이다. 중국 인민폐는 안된다고 해서 미화 20달러만 환전했다. (선상비자 지불용)
이날 회사에서 10만원 지원도 받았다. 사장님이 부르시더니 중국가는 데 얼마나 지원해줄까하길레 필요없다고했는 데도 10만원 꾹 찔러주었다. (눈물 찔끔_좀만 더 주지)
근데 금요일 야근의 여파 때문인지 토요일에 정상출근을 못했다. 더욱이 부하직원이 이메일서버가 이상이 있다는 연락이 와서 아침에 원격접속으로 서버를 살피다보니 출근했다가 인천으로 가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명 땡땡이를 쳤다.(배은망덕…10만원도 받은 놈이…) 결국 인천으로 가는 전철안에서 사장의 성난 전화를 받게 되었다. 많이 반성하고 오라고 했다. (아직은 반성보다는 배려해주지 못하시는 사장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 더 크다)
여기까지가 여행 떠나기 전까지의 우여곡절.
간신히 2시 10분 정도에 동인천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집에서 1호선만 타고 주~욱 타고 왔는 데 2시간 걸렸다. 택시잡고 이마트옆에 내려서 인천 제 2 국제여객터미널을 찾았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정말로 이마트 옆에 있는 줄 알았기 때문에 길 건널 생각을 못했기에 한동안 이마트 근처에서 헤맸다. 결국 버스정류장에 있는 인근 지도 보고 찾게 되었다.
출국장의 전화부스 근처를 가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데 서로들 어색한 모습이 보였다. 일행이 있는 사람, 나같이 혼자 온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아직 안온 멤버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둥님하고 탁구님, 비록 같이 가지는 않았지만 타잔보이님하고도 첫인사를 나눈 공간이었다. 서로들 너무 어색한 분위기라 사진 찍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누구 이 때의 사진이 있다면 한장만…)
인민폐 환전을 하지 않아서 항구에서 할려고 했는 데 마침 단속이 심해져서 환전하는 할머니들을 찾기 힘들다고 하였다. (이런…) 결국 한명의 할머니가 환전한다는 정보를 얻고는 환전을 했다. 20만원을 환전했는 데 2,000원 추가로 달라고 해서 202,000원에 인민폐 1,700원을 받았다. 환률을 계산하면 당시 은행이 130.2원인 것에 비하면 119원정도로 오히려 은행보다 더 싸게 환전한 셈이다.
3시 40분경부터 배에 승선하기 시작하였다. 걸으면 3분정도 될 거리를 버스로 이동하여 들어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좌우간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중국으로 타고갈 “골든 브리지 페리”호를 제대로 보게 되었다.
승선표에 있는 방호수 301호를 찾아서 들어가니 처음에 예상했던 4인 1실의 침대칸이 아니라 50개 정도의 침대칸이 있는 대형방이었다. 일순 당황하였다. 남자, 여자 공용이었기에 대학 MT이후 겪어보지 못한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쨌든 나한테 배정된 침대인 16호를 찾았다. 중간 정도에 있는 복도쪽 2층이었다.
2층 침대에 짐을 푸는 동안 과거 대학 기숙사에 살던 선배를 찾아가 2층 침대에서 술먹다 자다가 화장실 가기위해 내려오는 도중 계단을 헛디뎌 넘어져서 연탄 난로를 엎었던 기억이 났다. 그 이후로 2층 침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 데…(이런…)
사진에 이상한 엘리스님과 룸바님이 찍혔다.
객실의 출입구쪽을 찍은 사진에는 김정환님과 아둥님, 뒷모습으로 구분이 안되는 분, 스마일님, 와우블루님, 또다시 룸바님이 찍혔다. 대강 이렇게 생긴 페리호의 방에서 하루를 지내게 되었다.
중국까지 타고 간 “골든 브리지 페리”호의 지도를 참고로 찍었다. 투숙했던 방의 위치는 2층의 좌측 하단이었다. 우측으로 가면 빠징고 오락실이 있었고 중앙의 홀 계단을 지나면 마린 씨어터와 노래방이 있었다. 출발하는 날 7시에서 9시에 한 영화가 성룡의 취권2였었다. 사우나실은 들어가보지 않아서 어떤 시설인 지 알 수 없다. 여자 이용시간이 먼저고 다음이 남자 이용시간으로 되어 있었다.
3층은 매점과 식당으로 되어 있고 선상 전망대가 있어서 바다 풍경을 즐길 수 있었다. 식사시간은 6시에서 8시였다. 식권은 승선시에 2장을 받았기에 석식과 조식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응급실도 있었는 데 이용시간이 개방되어 있지 않고 특정 시간으로 정해져 있었다. 과연 운영은 진짜로 했는 지 궁금하다.
1층에는 안내데스크와 면세점이 있었다. 면세점의 품목이 얼마 되지도 않고 살게 없어서 한번 구경하고는 안가봤다. 영업시간이 저녁 8시에서 10시, 오전 7시에서 8시 였던 것 같다.
5시 정도에 배가 한번 출발한 적이 있었다. 항구를 떠나 운행하였기에 중국으로 출발한 줄 알았는 데 잠시 지나니 다시 항구에 있었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진짜로 출발한 시기는 6시경이었다.
스트레스 쌓인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저기 보이는 인천 아니 한국에 그것을 남겨두고 떠났다. 이제 정말로 새로운 것을 보는 것에 충실하기 위해서.
저녁식사는 김치찌개와 돈까스 중 택일이었다. 돈까스를 먹었는 데 일반 돼지고기를 다진 것을 튀긴 것이 아니라 잎으로 고기를 한번 감싸고 속에는 감자전분같은 액상소스가 있는 특이한 것이었다. 일본식이나 왕돈까스만 먹었기에 조금 색다른 돈까스였다. (선상에서 제공하였기에 그렇게 생각했는 지도) 이때 저녁은 이기정님과 김기태님하고 먹었다. (아님 말고… 아직 이름과 얼굴의 매칭이 미숙)
항구를 떠나면서 연안으로 들어서자 갈매기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갈매기떼들과 여행객들의 새우깡을 떼어 놓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이 때 비숍님의 화려한 새우깡 투척 기술을 보게 되었다. 일견 갈매기를 조련하는 듯한 환상의 새우깡 투척기술이었다. 이 때는 누구인 지 몰라 인사를 나누지는 않았다. 같은 방도 사용하지 않으니 더욱 모를 수 밖에.
산에서 해가 빨리 진다고 했나. 바다도 만만치 않았다. 더욱이 수평선을 경계로 사라질 때는 금방이었다. 이 당시 다른 인원들은 왜 사진을 안찍나 궁금했다. 내일이면 다시 못볼지도 모르는 석양일 수도 있었는 데… (타이타닉을 연상하고 있던 중)
이렇게 중국발 첫날의 해는 저물었다. 8시 이후에 했던 선상 세미나와 전투 중국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사진도 없고, 잠도 자야겠고, 내일 일찍 출근해서 보고서도 작성해야겠고…)
[이 게시물은 라이노님에 의해 2008-04-15 18:59:56 여행후기에서 이동 됨]